
솔직히 처음엔 그냥 흘려봤습니다. 제목만 보고 "또 영지 키우는 먼치킨물이겠지" 싶었거든요. 그런데 읽기 시작한 지 10화도 안 돼서 자리를 못 뜨고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제가 지금껏 본 완결 웹툰 중에서 이 정도로 처음부터 끝까지 고르게 재밌었던 작품이 몇이나 됐나 싶을 정도입니다.
빙의물인데 검도 마법도 아닌, 토목공학으로 싸운다
일반적으로 빙의물이라고 하면 전생 기억이나 압도적인 무력을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구조가 공식처럼 굳어져 있습니다. 여기서 빙의물(憑依物)이란 현대인의 의식이 다른 세계나 인물의 몸속으로 옮겨가는 설정을 기반으로 한 장르를 말합니다. 독자들도 그 공식에 이미 익숙해진 탓에 "다 거기서 거기다"라는 반응이 나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역대급 영지 설계사의 주인공 로이드 프론테라는 그 공식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습니다. 빙의한 인물인 김수호는 토목공학을 전공한 평범한 청년인데, 그가 가진 유일한 무기가 바로 현장 노동 경험과 전공 지식입니다. 홍수 문제를 해결하는 장면에서 치수(治水) 개념이 등장하는데, 치수란 물의 흐름을 다스려 범람과 가뭄을 통제하는 기술로, 고대부터 국가 존망을 좌우하던 핵심 토목 기술입니다. 판타지 세계에서 마법사가 불덩이를 던지는 장면 대신, 수로 설계도를 들고 영지 주민을 설득하는 장면이 나온다는 게 이 작품이 다른 이유입니다.
제가 직접 읽어보니, 건축 이야기가 나온다는 말에 처음엔 살짝 걱정이 됐습니다. "이거 공학 강의 듣는 건 아니겠지?" 하고요. 그런데 막상 읽어보면 전공 지식이 어렵게 느껴지기는커녕 오히려 이야기의 재미를 배가시키는 장치로 작동합니다. 상하수도 정비, 도로와 다리 설계 같은 사회기반시설(인프라) 구축 과정이 캐릭터의 감정선과 맞물리면서 자연스럽게 흡수됩니다. 여기서 사회기반시설이란 도로, 교량, 상하수도처럼 주민의 생활과 경제 활동을 지탱하는 물리적 기반을 통칭하는 개념입니다.
국내 웹툰 산업 전체 거래액이 2022년 기준 1조 8,290억 원을 넘어서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만큼(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비슷한 장르가 쏟아지는 현재 시장에서 이 작품이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설정의 신선함 덕분이 크다고 봅니다.
이 작품에서 주목할 만한 또 다른 지점은 각색(脚色)의 완성도입니다. 각색이란 원작 소설을 웹툰이라는 다른 매체에 맞게 재구성하는 작업인데, 원작을 먼저 읽었던 독자들 사이에서 "웹툰이 오히려 더 낫다"는 반응이 지배적입니다. 저도 소설로 먼저 접근했다가 지루함을 느끼고 웹툰으로 넘어왔는데, 솔직히 그게 신의 한 수였습니다. 각색 작가가 원작의 뼈대는 살리면서 개그 호흡과 표정 연출을 대폭 강화한 덕분에 전혀 다른 작품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
역대급 영지 설계사에서 제가 꼽는 핵심 강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 현대 토목공학 지식을 판타지 문제 해결에 활용하는 독창적인 설정
- 기사 하비엘과 로이드의 진지함 대 개그 캐릭터 간 케미
- 주인공뿐 아니라 영지 주민들까지 변화하는 앙상블 성장 서사
- 복선 회수가 촘촘하게 설계된 탄탄한 스토리 라인
- 뒤로 갈수록 퀄리티가 올라가는 작화 — 표지를 능가하는 본편 그림체
개그 웹툰인데 왜 이렇게 감동이 남는가
일반적으로 개그 비중이 높은 웹툰은 스토리가 얕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꽤 들어맞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웃기다가 어느 순간 "그래서 결론이 뭔데?"라는 허탈함이 오는 작품들을 여럿 봤거든요. 그래서 역대급 영지 설계사를 읽기 시작할 때도 솔직히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달랐습니다. 개그와 서사가 따로 노는 게 아니라 하나의 흐름 안에서 유기적으로 얽혀 있습니다. 웃고 나면 바로 다음 장면에서 인물들의 진심이 드러나고, 그 진심이 복선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반복됩니다. 결국 읽다 보면 영지가 성장할수록 저도 같이 뿌듯해지는 이상한 감정을 경험하게 됩니다.
특히 표정 연출은 이 작품의 가장 뚜렷한 개성입니다. 웹툰에서 표정 연출이란 대사 없이 캐릭터의 감정 상태를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핵심 표현 수단인데, 역대급 영지 설계사의 그림 작가는 이 부분에서 거의 경지에 올라 있다고 느꼈습니다. 진지한 장면에서 갑자기 터지는 기괴한 표정 하나가 분위기를 통째로 뒤집어버리는데, 그게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높여줍니다.
용두용미(龍頭龍尾)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시작뿐 아니라 끝도 훌륭한 작품을 가리키는 말인데, 제가 살면서 본 만화 중에 이 표현이 진짜로 맞아떨어지는 작품이 얼마나 됐나 돌이켜봤을 때, 역대급 영지 설계사는 그 짧은 명단 안에 들어가는 작품입니다. 본편 210화, 완결이 난 작품입니다. 질질 끌다 흐지부지 끝나는 작품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보면, 이게 얼마나 소중한 경험인지 알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극초반부는 상대적으로 약합니다. 오크 등장 이후, 라코나 구간부터 체급이 확 올라가는 느낌이라 그전까지는 조금 느리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래도 그 구간을 버텨내면 그 이후의 전개가 충분히 보상해줍니다.
웹툰 시장 분석에서도 완결 작품에 대한 독자 충성도가 연재 중 작품보다 높게 나타나는 경향이 확인됩니다. 한국만화가협회 자료에 따르면 완결 작품의 재독률은 연재 중 작품 대비 평균 40%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납니다(출처: 한국만화가협회). 지금 역대급 영지 설계사를 읽기 시작해도 처음부터 끝까지 끊김 없이 볼 수 있다는 점이, 이미 완결된 이 작품을 지금 추천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정통 먼치킨 판타지만 찾다가 지친 분이라면, 혹은 오랜만에 처음부터 끝까지 후회 없이 완독한 작품 한 편이 필요하신 분이라면 강력하게 권합니다. 외전도 현재 진행 중이니 본편 완결 이후에도 캐릭터들을 더 만날 수 있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입니다. 초반 몇 화 넘기는 게 고비인데, 그 고비만 넘기면 멈추기가 어렵습니다.
네이버 웹툰 - 역대급 영지 설계사
https://comic.naver.com/webtoon/list?titleId=777767
역대급 영지 설계사
소설 속 귀족이 된 토목공학도 김수호. 그런데 뭐? 내 영지가 곧 망할 거라고? 그럼 살려야지. 설계하고, 건설하고, 분양해서. [전 대륙이 기다려온 특별한 기회! 퍼펙트한 교통, 최상의 학군, 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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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몰입 판정 : ★★★★★ (5/5)
추천 대상
- 개그와 판타지를 함께 좋아하는 독자
- 영지 운영·경영물을 선호하는 독자
- 사이다 전개를 좋아하는 독자
- 독특한 설정의 판타지 웹툰을 찾는 독자
- 웃기면서도 몰입감 있는 작품을 원하는 독자